문화>영화리뷰>‘THE LIGHT BETWEEN OCEANS’, 파도가 지나간 자리 | 문화
관리자 | 조회 991 | 2021-09-24 11:44
용서는 한 번이면 되지만 미움은 평생 간다.
<파도가 지나간 자리> 호주작가 M.L스테드먼의 장편소설<THE LIGHT BETWEEN OCEANS)가 원작인 영화로 우리나라에서는 2017년도에 개봉되었다. 영화의 배경이 되는 태평양의 외딴섬 야누스는 정면으로는 태평양을, 측면으로는 인도양을 마주하고 있어 로마신화 두 얼굴을 가진 야누스라는 신의 이름을 따서 이름한 섬이다. 멀리서 보면 일직선으로 보이는 수평선처럼 단일한 풍경으로 보이지만, 육지와 만나는 지면에서 보면 들어오고 나가는 밀물과 썰물에 따라 그 모양이 계속 달라진다.
1차 세계대전 참전용사였던 ‘톰’(마이클 패스벤더)은 전쟁의 상처로 사람들을 피해 외딴 섬의 등대지기로 자원한다. 젊은 전쟁영웅인 그가 외딴섬 등대지기를 자청하니 등대관리청에서는 곧바로 발령을 내준다. 참혹한 전장에서의 기억 때문에 죄책감과 공통에 시달리던 톰은 특별한 여인 이자벨’(알리시아 비칸데르)을 만나 전쟁의 트라우마에서 치유를 받는다. 순수하고 명랑하면서도 열정적인 이자벨과 사랑에 빠진 톰은 곧 결혼을 하게 되고, 오직 둘만의 섬에서 행복한 신혼생활을 시작한다.
하지만 행복도 잠시 사랑의 결실로 얻은 아기를 2번이나 유산하게 되면서 깊은 상실감에 빠진 이자벨은 점점 빛을 읽어간다. 슬픔으로 가득했던 어느 날, 파도에 떠내려 온 보트 안에서 남자의 시신과 울고 있는 아기를 발견한다. 이자벨은 아기를 둘이나 잃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에서 기적처럼 눈앞에 나타난 아기를 품에 앉으며 감격에 겨워한다.
그녀는 망설임 없이 아기를 운명의 선물로 받아들이고 키울 것을 결심하지만 남편 톰은 등대지기 근무 규칙에 따라 모든 사항을 사실대로 상부에 보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너무도 아기를 간절히 원하는 이자벨의 간절한 청을 이기지 못하고 또 사랑스럽기 그지없는 아기를 키우고 싶은 본능 앞에 진실을 숨기고 법을 어긴 죄인이 되기를 선택한다.
아이의 세례식을 위해 찾아간 교회에서 우연히 아이의 생모의 존재를 알게 되면서 주인공 톰은 양심의 가책으로 괴로운 나날을 보내게 된다. 톰과 이자벨은 루시를 친자식으로 여기고 지극히 사랑하지만 한편으로 아이와 세상을 속인 죄책감으로 괴로워 한다. 죄책감을 이기지 못한 톰이 아이를 찾는 단서가 되는 물건을 친모에게 보내면서 영화는 긴장감을 더하며 반전의 소용돌이 속에 속도감 있게 전개된다.
자극적인 소재와 환타지가 주를 이루는 최신 영화들과는 달리 전반부는 아름다운 풍경과 소박한 일상을 배경으로 잔잔하게 풀어나가는 스토리가 주는 평온함이 있다. 중반으로 넘어가면서 극적인 사건전개와 의외의 반전으로 긴장감 있게 전개되어 몰입감을 더해 준다.
영화 ‘파도가 지나간 자리’는 참 좋은 영화다. 영화를 보는 내내 스스로에게 질문을 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내가 톰이었다면 생모에게 사실을 알렸을까? 아니면 끝까지 숨기고 살았을까? 양심의 가책 때문에 평생 속이고 살지는 못했을 것 같다. 내가 친모였다면 아이를 몰래 키운 그들을 용서할 수 있었을까? 아마 쉽게 용서하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물음표를 던져주는 영화가 좋은 영화이다. 질문 속에서 서로 다른 상황과 역할 속에 살아야 하는 나와 다른 사람들의 감정과 처지를 조금이라도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마음을 키워주기 때문이다.
특별히 이 영화가 감동적인 것은 남편 톰이 아내를 끝까지 감싸고 모든 죄롤 홀로 지고 가려는 지극한 사랑과 해나의 남편이자 아이의 친아빠인 해리는 독일인으로 전쟁직후 마을 사람들에게 따돌림과 폭행을 당하면서도 쉽게 그들을 용서하고 밝게 살아가는 모습 때문이다. 마을 사람들이 밉지 않느냐고 묻는 아내에게 ‘용서는 한 번이면 되지만 미움은 평생 간다.’ 말이 긴 여운을 남기며 잔잔한 감동을 준다.
글 이상희 수석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