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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 조회 1020 | 2021-09-03 15:21
장난감 전화기
우리 교실에 전화기가 한 대 있었다. 교무실에서 쓰던 것을 새 전화기가 들어와서 교실에 갖다 놓았다. 선만 이으면 전화기 구실을 하련만 장난감 전화기로 사용되고 있었다. 다른 아이들은 전화기 옆에도 가지 않았다. 선 끊어진 전화기가 전혀 아이들의 관심의 대상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 아이만은 늘 그 전화기에 옆에 붙어 지냈다. 영지였다. 지적장애아인 그의 집에는 전화기가 없었다. 할머니와 같이 사는데 전화기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았고 전화기를 산다거나 전화 요금을 낼 형편이 못되었다. 아이들이 모두 밖으로 나가는 점심시간이 되면 그는 전화기를 가지고 전화를 하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자그마한 소리로 전화를 하다가 차츰 소리가 커졌다.
그가 전화를 하는 모습을 옆에서 듣고 있노라면 참 진지하였다. “아냐, 아냐. 그게 아니라고. 이건 나의 진심이라고…….” 그때마다 그의 표정에서는 지적장애아의 모습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때로는 발을 동동 구르기도 하고 머리를 마구 흔들기도 하였다. 하하 웃다가 버럭 화를 내기도 하고 때로는 수화기를 던져 버리기도 하였는데, 그럴 때에는 제정신으로 돌아온 사람처럼 나를 바라보고 얼굴이 빨개지면서 고개를 숙이기도 하였다.
“괜찮아, 영지야. 아까처럼 전화해 봐.” 그는 멋쩍은 듯 히죽 웃었다. 그리고는 고개를 흔들었다. “이제 그만할래요. 어차피 전화도 안 되는데요 뭐”
그가 장난감 전화기를 가지고 전화를 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도 그런 전화기가 한 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마음대로 할 수 있고 아무리 소리를 치고 떠들어도 괜찮으며 때로는 전화기를 던지면서 화풀이를 해도 괜찮은 전화기. 그러면서도 아무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는 그런 전화기가 한 대쯤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가르쳐도 가르쳐도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 아이를 만났을 때, 아무리 설득을 해도 막무가내로 고집을 부리는 아이를 만났을 때, 골탕을 먹이기로 작정을 하고 덤비는 학부모를 만났을 때…. 그때에 사용할 수 있는 전화기가 한 대 있었으면 하는 것이다.
그런 전화기가 있다면 학교 현장에서 알게 모르게 받는 많은 스트레스가 풀릴 것이다. 학교의 경영자도, 교직원도, 학생들도, 학부모도 모두의 마음을 시원하게 해 줄 장난감 전화기. 그런 전화기는 어디에 있을까?
현대인의 병 가운데 가장 많은 병이 신경계통의 병이라고 한다. 할 말을 제대로 못 하고, 하고 싶은 일을 제대로 못 하고 살면서 얻는 정신적 스트레스에서 오는 병이라고 한다. 이 병은 치료 약도 많이 나오고 치료 방법도 다양하지만 어쩐 일인지 병이 줄기는커녕 늘어만 간다고 한다. 별다른 방법이 없는 모양이다.
차라리 사람들 각자가 장난감 전화기를 한 대씩 가지고 다니면 어떨까? 하고 싶은 이야기를 마음대로 할 수 있고 내 맘대로 큰 소리를 쳐도 아무도 피해를 받지 않으며 간섭도 하지 않는 장난감 전화기. 직접 사람을 상대로 할 때는 할 수 없는 이야기를 마음껏 지껄일 수 있는 전화기. 마음 내키면 화풀이도 할 수 있는 장난감 전화기. 그걸 가지고 다니면서 잠시 전화를 해 보는 것이다. 그러면서 마음을 달래는 것이다. 살아가면서 수시로 닥쳐오는 정신적 스트레스를 쌓아두지 말고 장난감 전화기를 통하여 발산하는 것이다. 그리고 허허 웃고 사는 것이다
글 이 용 만 (동화작가, 일일선청소년교육연구소장)